'Music and Wine'에 해당되는 글 105건

  1. 2005.06.14 J.J. Cale - Sensitive Kind 2



나는 생애의 대부분을 반쯤 은퇴한 상태로 보냈다.” 라는 그의 말처럼, 1959 내쉬빌로 진출한 이래 그의 음반이 공개된 1971년까지 그리고 10여매 이상의 앨범을 선보인 현재에 이르기까지 케일은 결코 화려한 음악적 스타는 아니었다.

아무런 노력도 가미하지 않은 듯이 보이는 그의 여유있는 음악성은 유유자적하는 케일의 보헤미안적 기질을 단적으로 증명해준다. 또한 그의 매력적인 음반들을 접해 보면 Eric Clapton이나 Mark Knopfler같은 뛰어난 뮤지션들이 케일의 열렬한 추종자들인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얻을 있다. 케일의 ‘After midnight’, ‘Make love to you’, ‘Cocaine’등을 주요 레퍼터리로 하고 있는 에릭 클랩튼이 그렇고, ‘Cajun moon’ 부른 Maria Milder, ‘Clyde’ 노래한 Waylon Jennings등이 예이다.

또한 마크 노플러와 다이어 스트레이츠를 위시해서 Albert Lee( 그룹 크루세이더스, 지미 페이지, 크리스 팔로우와의 활동을 거쳤으며, 에릭 클랩튼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활약하기도 했음), Jim Rafferty(제리 래퍼티의 )등도 케일에게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받은 아티스트들이다. 그리고 이색적으로 라틴 기타리스트인 Santana 역시 케일의 ‘Sensitive kind’ 리바이벌 하기도 했다.

이렇듯 케일의 보컬과 연주스타일은 수많은 추종자를 낳았지만, 음악의 진수는 바로 그의 작곡 능력에 있다. 케일은 자신의 작곡재능을 통해 내쉬빌의 컨트리를 비롯해서 오랜 로큰롤, 재즈, 웨스턴 스윙, 리듬&블루스 등의 음악양식을 여름밤의 떠도는 꽃잎들처럼 자연스럽게 진정시킨다. 감정의 극에 달했음에도 결코 높아지지 않는 보컬, 그리고 완벽하게 감성적인 기타플레이를 위해 그는 곡을 쓰는 것이다. 그리고 차분한, 너무나 차분해서 선정적이기까지 편곡이 곡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킬 , 비로서 그는 레코딩을 위한 연주에 들어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흔히 제이 제이 케일을 A.O.R (Adult Oriented Rock) 선두주자로 주목하는지도 모르겠다.

1950년대 이후 록음악이 십대를 겨냥한 젊은 문화의 선구자로서의 역할만을 고집하는 반기를 들며 1970년대 등장한 A.O.R 사운드는 주로 30 전후의 연령층을 겨냥한 성숙된 감각을 표현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잃지 않는, 무척 차분하고 극히 세련된 음악이다. 따라서 감성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노련한 케일의 음악을 어덜트 컨템포러리의 영역에 귀속시키는 것은 무리가 없다. 하지만 귀속된 공식으로 케일을 판단하기에는, 그의 음악속에 흐르고 있는 예술성과 매력은 너무나 독특하다. 이렇듯 논리적 분석이나, 감각적 관용어로서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 케일의 음악이 지금 이순간 곡선을 그리며 필자의 아둔한 감각위에 오로라빛 환상을 창조해 내고 있다.

1938 12 5 오클라호마에서 출생한 케일은 10대중반, 지방의 툴사 바를 전전하며 컨트리&웨스턴, 스윙, 로큰롤, 블루스 등을 연주하는 무명 뮤지션으로 성장한다. 당시 그는 Gene Crose And The Rocktets 멤버 생활을 거쳐 Johnnie Cale And Valentines라는 자신의 밴드를 이끌기도 했다. 오로지 레코드를 통한 청음만으로 재즈와 블루스, 로큰롤 등의 모든 것을 섭렵한 케일이 컨트리 가수의 꿈을 안고 내쉬빌로 진출하여 프로로서 정식 데뷔한 것은 그의 나이 21 되던 해인 1959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시작은 무척이나 비참했다. 프론트맨으로서 성공적이지 못했던 그는 컨트리 음악의 대중화에 업적을 남겼던 Grand Ole Opry 순회 공연팀에 기타리스트로 참가하여 공연을 통한 월급에 만족할 밖에 없었다.

고난의 년이 지나간 , 케일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Leon Russell 베이스 연주자 Carl Radle 만나게 되는데, 이것은 그에게 전화위복의 계기였다. 활동지를 LA 옮긴 이들은 열정적인 잼세션에 들어간다. ‘This masquerade’, ‘A song for you’등의 원작자이자 A 세션맨이었던 레온 러셀을 비롯하여 래이들, Mark Benno 등과의 연주활동은 이후 케일의 음악적 방향을 설정했으며, Delaney & Bonnie, 에릭 클랩튼, 카커, 리타 쿨리지 유명 아티스트들과의 친분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레온 러셀이 설립한 스카이 스튜디오에서의 엔지니어 활동은 케일에게 편곡, 제작, 믹싱 등의 음악 제반 요소들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했다.

엔지니어 활동과 아울러 작은 클럽, 등에서 무명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케일이 자작곡이 ‘After midnight’ 레코딩한 것은 1963년의 일이었다(그러나 ‘After midnight’ 세상에 알려진 것은 7 후인 1970 에릭 클랩튼의 리바이벌에 의해서였다). 60년대의 대부분을 레코딩 기술자로 당대의 주요 아티스트들의 앨범 제작에 깊이 관여했던 그가, 1968 작곡과 연주를 위해 엔지니어를 그만 두었을 , 케일은 이미 에릭 클랩튼, 레온 러셀, 래이들 등의 일류 뮤지션들을 주도해 나가는 실력자로 인정받고 있었고, 레코딩 감각이 몸에 배어있는 유리한 입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1971 대망의 데뷔앨범 “Naturally” 발매하고 본격적인 아티스트의 길에 접어드는 케일은, 현재까지도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여 음악적 능력을 여실히 보여주는 보기 드문 뮤지션이다. 케일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독자적이고 고차원적인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해왔다. 수많은 뮤지션들의 모방과 시샘속에서

모든 종류의 음악이 그렇듯이 케일의 음악 역시 눈에 보이거나 만져지는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음악속에는 시간과 공간적인 협조가 존재한다. 따라서 그의청공간속에는 복합적인 변화 속에서도 불구하고, 악기의 수많은 소리들이 제각기 자신의 위치를 찾고 있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외부로부터 얻는 정보의 대부분이 시각을 통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사고는 시각적인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와 같은 시각적 예민성을 철저하게 이용하여 자신의청공간 창조해내는 것이 케일이 즐겨 사용하는 계략의 일부가 아닐까 한다. 까칠까칠한 밤송이 표면에서 느껴지는 촉각적 성질이라든지부드러운 머리결 매끄러운 이미지, 그리고휘몰아치는 파도소리에서의 청각적 성질 이전에 우리는 대상의 시각적 형태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케일은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음악을 통한 시각적 영상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심벌터치가 머리위를 스칠 우리는 밑으로 흐르고 있는 저음의 리듬파트와, 피부를 자극하는 기타음색, 그리고 가슴을 파고드는 영향력 있는 보컬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또한 감성의 선을 따라 움직이는 공간인선율까지도 그의 음악속에서는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의 실체적 특성의 그림자를 지니고 있다. 별다른 변화없이 보이고, 달콤하게만 느껴지는 작품들을 통해서 케일은 시공을 초월하는 다양한 변화와 감성을 이끄는 원근법적 선율을 구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고차원적 감각을 절반만이라도 따라잡을 있다면, 그리고 여린 하면서도 비수처럼 날카로운 선율의 선적 공간을 접수할 수만 있다면 케일의 음악은 분명 최고의 음악인 것이다.

http://members.nuri.net/aidcorp/index.html

Posted by 천마지우
,